안녕하세요, 문학정보입니다.
오늘은 수필.민속극 중 체제공의 수필 유관악산기 작품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수필.민속극의 작품의 주제 내용은 관악산 기행 소회 입니다. 그럼 상세한 내용은 밑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체제공의 수필 유관악산기
체제공의 고전수필, 유관악산기(<번암집 35권>)
내가 일찍이 들으니, 미수 허선생은 83세에 관악산 연주대에 올랐는데 걸음이 나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신선처럼 우러러 보았다고 한다. 관악산은 왕기(王畿)의 신령한 산이다. 그리고 선현이 일찍이 노닐던 곳이다. 한 번 그 위에 올라가서 마음과 눈을 상쾌하게 하고 선현을 태산처럼 모앙하여 못하는 마음을 붙이고자 하였으나 오래 전부터 생각은 있으면서도 잡무에 얽매여 이루지 못하였다. 병오년에 봄에 노량의 강가에 우거하니 관악산의 푸르름이 거의 조망에 들어오는 듯하여 마음이 춤추듯 움직여 막을 길이 없었다.
4월 13일 남쪽 이웃 이광국 숙현과 약속하고 말을 타고 출발했다. 수행하는 집안 아이들 또한 45명 되었다. 10리 남짓 가다가 자하동에 들어가서 한 칸 정자에서 쉬었다. 정자는 즉 신 씨의 별장이었다. 시냇물이 골짜기로부터 흘러오고 숲과 나무들이 그것을 덮고 있어서 아득히 그 근원을 알 수 없었따. 물이 정자 아래 이르러 돌과 마주쳐 물방울이 되어 뿌리고 고인 것은 푸른 못을 이루고 마침내 또 흔들려 움직이며 나아가서 동구를 한 바퀴 돌고 멀리 가는 것이 마치 광목을 널어놓은 것 같다.
언덕 위에는 진다래가 한창 피어서 바람이 지나가면 그윽한 향기가 때때로 물을 건너 왔다. 아직 산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가슴이 서늘하여 멀리서도 정취가 그만이었다.
정자를 거쳐 또 10리 남짓 가니 길이 험하고 높아서 말을 타고 갈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 타고 왔던 말과 하인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갔다. 칡넝쿨을 뚫고 구렁을 지나가는데 앞에서 길을 인도하던 사람이 혼미하여 절 있는 곳을 잃어 버렸다. 동서를 분별할 수가 없고, 해는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 길에는 나무꾼이 없어 물어 볼 수도 없으니 수행하는 자들이 혹은 앉기도 하고 혹은 서기도 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홀연히 보니 숙현이 나는 듯 빠른 걸음으로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좌우를 바라보았으나 잠깐 사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괴이하게 여기기도 하고 또 나무라기도 했다. 그 때 갑자기 흰 장삼을 입은 45명이 어디서부터인지 빨리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수행자들이 부르짖으며 좋아하기를 “중이 온다!”라고 했다. 아마도 숙현이 멀리 있는 절을 찾아내고는 먼저 몸소 가서 우리 일행이 여기 있다는 것을 승려에게 알린 것 같다.
이에 승려의 인도를 받아 대략 45리쯤 가서 절에 당도했다. 절 이름은 불성사였따. 이 절은 삼면이 산봉우리로 둘러있고 앞면만 훤하게 트이고 막힘이 없었다. 문을 열어 놓으면, 앉으나 누우나 한 눈에 천 리를 바라 볼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 아직 해뜨기 전에 아침밥을 재촉해 먹고 이른바 연주대라는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건강한 중 약간 명을 선별해서 좌우에 서서 같이 가게 했다. 중은 나에게 말했다.
“연주대는 여기서 10리 남짓 가야 하는데 길이 몹시 험하여 나무꾼이나 중들도 또한 쉽게 올라가지 못합니다. 아마도 기력이 감당치 못할까 두렵습니다.”
내가 중에게 말했다.
“천하만사는 마음이다. 마음은 장수이고 기운은 졸병과 같아서, 장수가 가는데 졸병이 어찌 안 갈 수 있겠는가.”
마침내 절 뒤 높은 산정을 넘어 가는데 혹은 길이 끊어지고 벼랑이 갈라진 듯한 곳도 있었다. 그 아래 천 길이나 되는 벼랑을 만나면 몸을 굽혀 아래를 굽어보는 것이 흔들흔들하여 마치 떨어질 것 같았다. 바라보니 모발이 모두 솟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수행원을 시켜 높은 소리로 “그만둬라! 그만둬라!”라고 외치게 했다.
나 또한 있는 힘을 다하여 곱사등이처럼 등을 구부리고 기어올라 마침내 연주대 정상을 정복했다. 정상에 평평하게 돌이 깔려 있는데 수십 명이 앉을 수 있었다. 그 바위를 이름하여 차일암이라 했다. 옛날 양녕대군이 왕위를 회피하여 관악산에 와 거주할 때, 간혹 이 연주대에 올라와 대궐을 바라보았는데 햇볕이 뜨거워 오래 머무르기 어려우므로 작은 장막을 치고 앉았다고 한다. 바위 구석에 꽤 오목하게 파 놓은 구멍 4개가 있는데 아마 장막을 안정시키는 기둥을 세웠던 곳 같다. 그 구명이 지금까지 완연히 남아 있었다. 이 대를 연주대라 이름하고 이 바위를 차일암이라 이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연주대는 구름과 하늘 사이에 높이 솟아있는데, 스스로 내 몸을 돌아보니 천하 만물이 감히 높음을 겨루지 못할 것 같았고 사방에 보이는 뭇 산봉우리들은 녹녹하며 비교할 것이 못 되었다. 오직 서쪽 가에 쌓인 기운만은 한없이 높고 아득하여 하늘과 바다가 서로 이어져 있는 듯했다. 그래서 하늘이라고 보면 바다이고, 바다라고 보면 하늘이었으니 하늘과 바다를 누가 분별할 수 있겠는가
한양의 성과 궁궐이 밥상을 대하는 것 같이 분명하게 보이고 소나무와 전나무가 고리처럼 둘러서 빽빽하게 벌려 서 있으니 경복궁의 옛 궁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녕대군이 오락가락 돌아보면서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던 일은 비록 백대의 뒤였지만 그 마음을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돌에 기대고 낭랑하게 읊었다.
“산에는 개암나무, 진펀에는 감초풀, 그 누구를 생각하는가, 서방의 미인이로다. 저 미인이여! 서방 사람이로다.”
숙현이 말했다.
“그 소리에 생각함이 있습니다.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임금을 연모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떳떳이 지켜야 할 도리이다. 본래부터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다른 게 없다. 다만 생각건대 나의 나이 67세이니, 미수옹의 그 때 나이에 비하여 16세나 적다. 그런데 미옹은 걸음걸이가 나는 듯 했다고 한다. 나는 힘이 부족하고 숨차서 고생고생 하면서 올라왔다. 도학과 문장이 옛사람과 지금 사람이 같지 않은 것은 본디 괴이할 것 없겠으나, 근력이 옛사람과 다름이 어찌 이렇게 현격한가. 하늘의 신령한 도움을 힘입어 내가 만약 83세가 되면 비록 들것에 실려서라도 반드시 거듭 이 연주대에 올라 고인의 발자취를 이을 것이니 그대는 나의 말을 기억하게나.”
숙현이 말했다.
“그 때 나 또한 따라 오게 될 것입니다.”
숙현의 나이는 65세였다. 그와 서로 웃고 말았다. 이날 불성암에 돌아와 투숙하고 이튿날 노량의 우거로 돌아왔다. 수행자는 이숙현, 생질 이유상, 족제 성공, 이들 홍원, 종질 홍진, 척손 이관기, 하인 김상겸이었다.
핵심정리
▶갈래 : 고전수필, 기행문
▶주제 : 관악산을 기행하며 느낀 소회
이해와 감상
조선 후기에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기행문. 순한문으로 기술되었고, 그의 문집인 ≪번암집 樊巖集≫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그가 67세 되던 1786년(정조 10)에 관악산을 등반하고 쓴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하동(紫霞洞)에 들어가 쉬고 길을 떠나 가다가 불성암(佛性庵)에 도착한다. 다음으로 연주대(戀主臺)라는 높다란 대에 오르고 거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일암(遮日巖)이 있다.
옛날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세자의 위를 피하여 관악산에 와 있을 때 날마다 올라가 대궐을 바라보면서 임금을 그리워하던 곳을 연주대라 하였고, 해를 쬐는 것이 괴로워서 오래 머무를 수가 없으므로 조그만 차일을 치고 바위 귀퉁이에 앉아 있었으니, 이 바위를 차일암이라고 하였다 한다.
저자는 사방의 많은 봉우리들은 자잘해서 따질 것도 없고, 오직 저쪽 가에 싸인 기운이 아득하고 편편한 것은 하늘과 바다가 서로 이어진 것인 듯하나, 하늘로서 보면 바다요, 바다로서 보면 하늘이니, 하늘과 바다를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양의 성과 대궐은 마치 밥상을 대한 것과 같은데, 한 덩어리 소나무와 잣나무가 둘러선 것으로 보아 경복궁의 옛 대궐임을 알겠고, 양녕대군이 여기에서 서성거리면서 쳐다보았다는 것은 비록 백대(百代)가 지나간 뒤라도 그 마음을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라 하였다.
또한, 저자는 지난날 그가 숭배하던 허목(許穆)이 83세의 고령으로 이 관악산에 올랐을 때의 그 젊음을 과시하던 모습을 상상하고 부러워한 나머지 이 산에 오를 것을 결심하였던 것이다. 이 글은 관악산을 돌아보면서 느낀 감정을 진지하고도 그윽하게 표현하여 수필로서의 귀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추가>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채제공이 67세 되던 해에 관악산을 다녀와 쓴 기행문으로, 그의 문집인 『번암집(樊巖集)』에 수록되어있다. 관악산을 오르게 된 이유와 계기를 제시하고, 여정에 따라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여정에 따라 보고 느낀 바를 제시하고 있으며, 연주대에서는 양녕 대군의 일을 떠올려 감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에 허목이 83세에 관악산에 오른 것을 떠올리고 자신 또한 연주대에 한 번 더 올라 고인의 발자취를 잇겠다는 생각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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