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문학정보입니다.
오늘은 설화.가전.소설 중 작자 미상의 설화 효녀 지은 설화 작품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설화.가전.소설의 작품의 주제 내용은 효 입니다. 그럼 상세한 내용은 밑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작자 미상의 설화 효녀 지은 설화
작자 미상의 설화 효녀 지은 설화 해석 해설
작자 미상의 설화 효녀 지은 설화 해석 해설입니다.
작자 미상의 설화, 효녀 지은 설화
작자 미상의 설화, 효녀지은
지은은 신라 한기부 백성 연권의 딸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그 어머니를 모셨는데, 32세가 되어도 오히려 시집가지 않고 밤낮으로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집이 가난하여 잘 봉양할 수 없게 되자, 지은은 남의 일도 하여 주고, 혹은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곤궁함을 이기지 못하여, 드디어는 부잣집에 청하여 몸을 팔아 그 집 종이 되고, 그 값으로 쌀 십여 석을 얻기로 하였다.
이로부터 효녀 지은은 그 부잣집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 주고, 날이 저물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밥을 지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이렇게 삼사일을 지낸 어느 날, 어머니가 딸에게 물어 말하기를
"지난날에는 밥이 거칠어도 먹는 것이 맛이 있더니, 요사이는 밥은 비록 좋으나 맛이 좋은줄을 모르겠고, 오히려 간장을 도리는 듯하니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효녀 지은은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다. 딸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크게 통곡하니, 지은도 함께 울어 그 슬픔이 한길에까지 미치었다.
이때 효종랑(신라 제 52대 효공왕 때의 화랑)이 나와 놀다가 이것을 보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부모에게 청하여 집에 있는 곡식 백 석과 의복을 보내 주고, 또 효녀 지은을 종으로 산 주인에게 곡식을 변상하여 주어 양민이 되게 했다. 이를 본 낭도들도 각각 곡식 한 석씩을 거둬보내게 되었다.
왕께서도 이 소식을 들으시고 곡식 오백 석과 집 한 채를 하사하시고 정역(조세와 부역의 의무)의 구실을 면제시켜 주었다. 또 곡물이 많아 나쁜 도적이 있을까 하여 유사(관청의 사무를 맡아보는 관리)에게 명하여 군사를 보내어 당번으로 모녀를 지키도록 하시고, 그 마을을 효양방(효도러써 부모를 봉양하는 마을)라 하시었다.
효종랑은 재상의 아들로 어릴 때의 이름을 화달이라고 하였는데, 대왕이 이르시기를
"효종랑은 아직 나이 어리나 어른스럽게 보인다."하시고, 현강왕의 딸로써 효종랑의 아내를 삼게 하시었다.
핵심정리
▶종류 : 민간 설화
▶성격 : 교훈적
▶주제 : 지은의 효행
▶의의 : 고대 소설 [심청전]의 근원 설화가 된다.
이해와 감상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에 전하는 신라의 민간 설화이다. 주인공 지은(智恩)이 연권(連權)의 딸이었기 때문에 [연권녀 이야기]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빈녀 양모(貧女養母)]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내용상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구전 설화가 문헌 설화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생긴 유동성이라고 본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빈녀 양모]의 설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효종랑(孝宗郞)이 남산 포석정에서 놀고 있을때 그 문객들이 거기로 달려왔는데 오직 두 사람만이 뒤늦게 왔었다. 낭이 그 까닭을 물으니 가로되, 분황사의 동쪽 마을에 한 이십 세 됨 직한 여자가 눈먼 어미를 껴안고 서로 소리쳐 울고 있으므로, 동리 사람들에게 그 이유을 물었더니 이르되, 그 여자 집이 가난해서 걸식하여 그 어미를 몇 해 동안 봉양하였는데, 마침 흉년을 만나 집에서는 어찌할 수 없어 남의 집에 품을 팔아 곡식 삼십 석을 얻어 큰 부자집에 맡겨 두고 복역하면서, 날이 저물면 쌀을 싸 가지고 집에 와서 밥을 짓고 같이 자고, 새벽이면 그 부자집에 가서 일하기를 수일 동안 하였다. 하루는 그 어미가 "전일의 거친 음식은 마음이 편하더니, 요사이 좋은 음식은 속을 찌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냐?"하니, 여자가 사실대로 말하였다. 어미가 통곡하매 딸이 단지 음식 봉양을 할 줄만 알고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지 못함을 한탄하며 서로 붙잡고 울므로 이것을 보느라고 늦었다고 하였다. 낭이 듣고 측은하여 곡식 백 곡을 보내니 낭의 양친이 또한 의복을 보냈고, 낭이 모든 무리가 조 천 석을 거두어 주었다. 이 일이 왕에게 알려지자 그 때 진성왕이 곡식 오백석과 집 한 채를 하사하고, 병졸을 보내어 집을 호위하여 도둑을 막게 하였다. 또 그 방(坊)에 정문(旌門)을 세워 효양리(孝養里)라고 하였다. 후에 그 집을 희사하여 절을 세우고 양존사(兩尊寺)라고 하였다.
이 설화는 후에 [심청전]의 근원이 되는 설화로서 그 주제가 효(孝)이고, 또한 그 구조에 있어서도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동일한 면을 보이고 있다. 근원 설화가 판소리로 발전하고, 여기서 다시 판소리계의 고대 소설로 형성되어 가는 발전 과정에 비추어 보아서도, [효녀 지은]의 설화가 [심청전]의 판소리나 고대 소설의 대본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많은 설화가 효에 주제를 두고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난 것처럼 헌신의 효가 가장 큰 효도로 평가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물질과 마음의 효, 즉 공양과 봉양의 효가 마찰을 일으키는 구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효녀 지은]이나 [심청전]이 그 예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한편, 효녀 지은의 설화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묶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 설화는 효녀 지은의 설화이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화랑인 효종랑(孝宗郞)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신라 사회에서 화랑의 사회적인 역할과 선행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로서, 이렇게 보면 효녀 지은의 설화는 부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효에 관한 설화는 일정한 양식이 있다. 우리 나라의 효행설화는 대체로 희생효설화(犧牲孝說話)가 많은데, 희생효설화는 다시 효녀 자기 희생형, 산삼동자형, 효자 매아형 등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자기 혹은 자식을 희생시키는 것은 효지상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임은 이미 [손순매아]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 중 [효녀 지은]은 자기 희생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설화들은 보통 "효녀가 자기의 몸을 희생하니 기적이 일어나 효도가 되었다"로 간추릴 수 있다. [효녀 지은]에서 자기의 몸을 희생한다는 것은 남의 종이 되었다는 것이요, 기적이라는 것은 귀족인 효종랑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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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의 상징성
어머니에 대한 음식 공양이 주된 이야기이니 여기서는 밥을 하는 솥의 상징성을 알아보아야 하겠다. 또 같은 효를 주제로한 중국의 곽 거의 이야기에서 부모 봉양을 위해 자식을 생매장하려 하자 솥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하니 이 설화에 어울릴 듯하다. 솥은 살림살이의 대표적 용구로서 우리에게 여겨져 왔다. 신화적으로 혹은 무속적으로는 솥은 재앙을 예고하고, 유교적으로는 왕권과 국위(國威)를 나타낸다. 경복궁 근정전 좌우의 솥도 그러한 의미이다.
▲다른 작품과의 관련성
이 설화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심청전]의 근원이 되었다. [심청전]이 꼭 이 설화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거타지 이야기], [태몽 이야기], [재생 설화], [개안(開眼) 설화] 등이 고루 근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주제 의식과 구조에 있어서는 [개안 설화]인 [관음사 연기설화]와 이 설화를 이어받고 있다.
한편 같은 효에 관한 설화인 경주의 [효불효 설화]를 바탕으로 박재삼이 [효불효교(孝不孝橋)]라는 시를 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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