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문학정보입니다.
오늘은 수필.민속극 중 박제가의 고전수필 소전 작품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수필.민속극의 작품의 주제 내용은 자신의 성취 예찬 입니다. 그럼 상세한 내용은 밑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박제가의 고전수필 소전
박제가의 고전수필 소전 해석 해설
박제가의 고전수필 소전 해석 해설입니다.
박제가의 고전수필, 소전
박제가의 고전수필, 소전(小傳)(정유집)
작품 감상하기
조선이 개국한 지 384년, 압록강에서 동쪽으로 1천여 리 떨어진 곳(압록강으로부터 그가 사는 곳의 거리를 헤아림. 역사의식이 보임)에 그가 살고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신라의 옛 땅이요, 그의 관향(貫鄕, 시조가 태어난 곳)은 밀양이다. <대학(大學)>(유교 경전인 사서의 하나)에서 뜻을 취하여 제가(齊家,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이름하였고, 이소(離騷, 중국 초나라의 굴원이 지은 부)의 노래에 뜻을 붙여 초정(楚亭, 어릴 때부터 <초사> 읽기를 좋아해 초정으로 호를 삼았음)이라는 호를 지었다.
그의 사람됨을 보자. 물소 이마에 칼날 같은 눈썹을 하고, 눈동자는 검고 귀는 하얗다(박제가의 외양 묘사. 귀인의 자부를 감추지 않고 드러냄). 고독하고 고매한 사람만을 골라서 남달리 치하게 사귀고, 권세 많고 부유한 사람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사이가 멀어진다. 그러니 뜻에 맞는 이가 없이 늘 가난하게 산다.
어려서는 문장가의 글을 배우더니 장성해서는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을 제도할 학문을 좋아하였다. 수개월을 귀가하지 앟고 노력하지만 지금 사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보통 사람들보다 앞서나가는 학문을 함).
그는 이제 한참 고명한(고상하고 현명한, 식견이 높고 사물에 밝은) 자와 마음을 나누고, 세상에서 힘써야 할 것은 버리고 하지 않는다. 명리(名理, 하늘이 내린 목숨과 자연의 이치)를 따져서 종합하고, 심오한 것에 침잠하여 사유한다. 백 세대 이전 인물에게나 흉금을 터놓고, 만 리 밖 먼 땅에나 가서 활개치고 다닌다(이 글을 쓴 이후에 실제로 4차례나 연행 길에 오름).
구름과 안개의 색다른 모습을 관찰하고 갖가지 새의 신기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원대한 산천과 일월성신, 미미한 초목과 벌레, 물고기, 서리, 이슬은 날마다 변화하지만 왜 그러한지 알지 못하는데 그 현상의 이치를 가슴속에서 또렷하게 터득하였다. 언어로서 그 실상을 다 표현할 수 없고, 입으로 그 맛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혼자서 터득한 것임을 자부하지만 그 누구도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자연과 사물의 이치를 모두 터득함.)
아아! 몸뚱이는 남을지라도 떠나가는 것은 정신이고, 뼈는 썩을지라도 남는 것은 마음이다. 그의 말을 알아듣는 분은 생사와 성명(姓名)을 초월한 그를 발견하기 바라노라!
그를 예찬하여 쓴다.
책을 지어 기록하고 초상화로 그려놓아도
도도한 세월 앞에선 잊혀지는 법!
더욱이 자연스런 정화(깨끗하고 순수한 알짜)를 버리고
남과 같이 진부한 말로 추켜세운다면
불후의 인물이 될 수 있으랴?
전(傳)이란 전해 주는 것.
그의 조예와 인품을 온전히 드러내지는 못해도
완연히 그 사람이라서 천만 명의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한 다음이라야
천애의 타지에서나 오랜 세월 흐른 뒤에 만나는 사람마다 분명히 그인 줄 알 것이다.
핵심정리
▶갈래: 고전 수필, 전(傳)
▶성격: 자전적, 고백적
▶주제: 박제가 자신 스스로의 성취에 대한 예찬
▶특징
세속적 명리를 추구하지 않는 작자 자신의 모습을 개성적으로 그림.
자신을 객관화하여 판단 평가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청빈하고 고고한 삶에 대한 자부심과 조선사회에서 서얼로 태어나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보임.
구성:
1) 도입 → 박제가 자신을 소개함.
2) 전개 → 자신의 외모, 성격, 즐기는 일을 서술함.
3) 마무리 → 스스로를 예찬함.
이해와 감상
박제가는 서얼 출신으로 중년이 넘어 무과(武科)에 장원급제한다. 하지만 신분상의 이유로 하급관료에 머물 뿐 자신의 웅대한 뜻을 펴지 못한다. 그 우울한 생애를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서상수 등의 소외된 북학파 정치인들과 함께 울분을 안으로 삭히며 보냈다. 그러한 박제가의 모습이 이 글에 실려 있다. 이 글은 북학파학의 동인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자전적 글을 남긴 27살의 박제가가 말하는 박제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박제가의 시대는 박제가를 알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박제가는 자신이 처한 곳에서 끊임없이 조선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예를 들어 정조 때 연이은 가뭄에 농서(農書)를 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박제가는 <북학의(北學議)>를 정조에게 올리며(1798년), 장문의 상소문을 따로 올린다. 거기서 박제가는 농업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박제가는 네 차례나 청나라를 다녀올 정도로 국제적 감각에 뛰어났으며, 북학파의 일원으로 조선의 개혁을 온 몸으로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끝내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고 오히려 유배로 생을 마감했다. 이 글은 조선을 위해, 민중을 위해 개혁을 하고자 했으나 그 시대에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우하게 살다 간 박제가의 자전적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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