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문학정보입니다.
오늘은 시조.가사 중 박인로의 가사 사제곡 작품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조.가사의 작품의 주제 내용은 유유자적하는 한음의 삶 입니다. 그럼 상세한 내용은 밑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박인로의 가사 사제곡
박인로의 가사, 사제곡(莎堤曲)
핵심 정리
▶연대 : 조선시대의 광해군 3년(1611년)
▶갈래: 가사, 은일가사
▶성격: 한정적, 유교적
▶운율 : 3.4조 4.4조의 4음보 가사체로 되어 있음. 운문체
▶심상: 묘사적 심상
▶주제 : 유유자적하는 한음의 생활 / 사제(莎堤)의 승경(勝景)과 이덕형의 유유자적함.
▶특징
시선의 이동에 따른 시상전개(산을 오르면서 교송, 하늘, 봉봉곡곡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태도가 보임
이해와 감상
(용진강 사제의 뛰어난 경치와 그 곳에 한가로이 소요(逍遙) 자적(自適)하는 한음 이덕형의 생활을 그림)
사제(莎堤. 사제는 지명으로, 용진강(龍津江. 경기도 광주지역 한강의 지류) 동쪽 5리쯤 떨어진 곳에 있으니, 곧 한음(漢陰) 이상공(李相公)의 강정(江亭)이 있는 곳이다)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덕형의 사제 생활을 읊은 사제곡(莎堤曲)
한음 이덕형 가문과 노계 박인로 가문의 최초의 인연은 1601년 2월 한음이 사도체찰사(四道體察使; 충청, 전라, 경상, 강원)가 되어 부임하면서 영천에 있는 광주이씨 시조묘를 찾아가던 중에 우연히 부근의 박인로 조부의 묘를 발견하여 참배하고 가면서 이루어 졌다.
이때 이덕형은 40세로 이미 좌의정을 지낸 신분이었음에도 일개 시골 무관의 조부 묘에 절을 하고 갔다는 것은, 이덕형이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박인로의 시문학에 대한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하여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는 이덕형의 별서(別墅)가 있던 용진 사제(남양주시 송촌리)를 자주 찾아 한음과 벗하며 지내면서 많은 시문을 지어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 이때 지어진 유명한 시가(詩歌)가 박인로의 <사제곡(莎堤曲)>이다. 박인로의 시가(詩歌) 사제곡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萬曆辛亥春 漢陰大監命作此曲 莎堤勝地名 在龍津 江東距五里許 大監江亭所在處也
(만력신해춘 한음대감명작차곡 사제승지명 재용진 강동거오리허 대감강정소재처야)
1611년 봄에 한음대감의 요청으로 이 노래를 지었는데 사제(莎堤)라는 곳은 용진의 강에서 동쪽 5리 되는 거리에 있고 대감의 정자가 있는 경치 좋은 곳이다.
박인로(15611642)는 자는 덕옹, 호는 노계 또는 무하옹이다.
박인로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이 되어 전쟁터에서 싸웠으며, <태평사>를 지어 병졸을 위로했다. 1599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은 순탄치 못했다.
1611년(광해군 3)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광해군 시절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정계를 은퇴, 벼슬에서 물러나 경기도 용진(龍津:지금의 양주군) 사제(莎堤)의 농막에서 은거하며 시국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덕형과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박인로가 당시 이덕형을 찾아갔을 때 51세 때 지은 가사로 이덕형의 마음을 대신해 장가체인 가사로 대작한 작품으로, 용진 사제의 뛰어난 경치와 그곳에 한가로이 자연을 벗하며 소요(逍遙)·자적(自適)하는 한음 이덕형의 생활을 그렸다.
이 가사의 강점은 단순한 서경묘사나 서정의 표현에 머물지 않고, 임금을 그리는 정과 어버이를 끝까지 받들고자 하는 지극한 효심이 담겨 있는 데 있다.
사제(莎堤)는 용진(龍津)에 있는 이덕형의 별서지가 있었던 곳으로, 작자가 사제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덕형의 소요자적(逍遙自適)하는 모습을 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덕형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그 내용은 이덕형이 임금의 영총을 지극히 받아 성은에 감격하여 진력하다가, 늙고 병이 들어 관직을 사퇴하고 광주(廣州) 용진강 동쪽의 사제로 돌아왔음을 읊었다. 고향에 돌아와 보니 옛날 보던 제일강산이 임자 없이 버려져 있어 이제야 주인을 만난 듯함을 춘흥과 추흥을 통하여 노래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망극한 성은을 잊을 수 없다고 하였으며 임금을 그리는 정과 어버이를 받들고자 하는 심정을 간절히 나타내었다.
<추가>
사제(莎堤)는 용진(龍津)에 있는 이덕형의 휴양처이다. 작자가 사제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덕형의 소요자적(逍遙自適)하는 모습을 읊은 것으로 이덕형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내용은 이덕형이 임금의 영총을 지극히 받아 성은에 감격하여 진력하다가, 늙고 병이 들어 관직을 사퇴하고 광주(廣州) 용진강 동쪽의 사제로 돌아왔음을 읊었다. 고향에 돌아와 보니 옛날 보던 제일강산이 임자 없이 버려져 있어 이제야 주인을 만난 듯함을 춘흥과 추흥을 통하여 노래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망극한 성은을 잊을 수 없다고 하였으며 임금을 그리는 정과 어버이를 받들고자 하는 심정을 간절히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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