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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설화.가전.소설 중 미상의 고전소설 임경업전(임장군전) [14] 작품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설화.가전.소설의 작품의 주제 내용은 민족적 영웅 입니다. 그럼 상세한 내용은 밑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미상의 고전소설 임경업전(임장군전) [14]
미상의 고전소설 임경업전(임장군전) [14] 해석 해설
미상의 고전소설 임경업전(임장군전) [14] 해석 해설입니다.
미상의 고전소설, 임경업전(임장군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임경업전(임장군전)
줄거리
임경업은 비범한 인물로서 무과에 급제한다. 사신 이시백의 무관으로 명나라에 가게 된다. 가달의 침입을 받은 호국이 명에 구원병을 청하자, 임경업이 명군을 이끌고 출전한다. 그는 용맹을 떨치어 호국을 구하고 귀국한다.
호국이 힘을 길러 조선을 침략하려 하자, 조정에서 임경업을 의주 부윤으로 보내 방어하게 한다. 호국군은 임경업이 두려워 의주를 피하고, 바다로 침입해 조선왕의 항복을 받고 회군한다. 임경업은 회군하는 호국군을 섬멸하려 했으나, 인질로 잡혀 가는 왕자들 때문에 포기하였다.
호왕이 임경업을 제거하려고 그에게 명나라를 치도록 요구한다. 임경업은 우방인 명나라를 칠 수 없어 명과 내통하여 거짓 항복을 받고 귀국한다. 임경업의 내통 사실을 안 호왕이 그를 잡아들인다. 임경업은 명나라로 도망하여 명군과 함께 호국을 치려다가 승려 독보의 배반으로 호국에 잡힌다. 호왕은 임경업의 당당한 태도에 감복하여 그를 인질로 잡았던 왕자들과 함께 조선으로 돌려 보낸다.
조선의 김자점은 역모에 방해가 될까 하여 그를 살해한다. 임금은 임경업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김자점을 문초하여 죽인 다음, 임경업의 충의를 포상한다. 그 자손들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낙향하였다.
<추가>
어릴 때부터 비범했던 임경업은 무과에 급제하였고 백마강 만호로서 백성을 잘 다스려 칭송이 자자했다. 우의정 원두표는 임경업을 천거해서 천마산성을 증축하게 하였다. 임경업은 군사들과 섞여 성을 증축하는데 힘을 다했고 군사들도 임경업을 존경하였다. 그 사람됨이 널리 알려져 이시백이 명나라의 사신으로 갈 때도 발탁되어 함께 갔다. 그런데 명나라에 조공하던 호국이 오랑캐의 침입을 받아 위태로워지자 명나라에 원병을 구했다. 그때 황자명이라는 장수가 명나라 황제에게 임경업의 비범함을 알렸고, 명나라 황제는 임경업에게 오랑캐를 치게 했다. 임경업이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자 호국의 왕과 명나라 황제가 모두 기뻐하며 상을 내렸다. 또한 온 나라에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호국은 힘을 키워 조선을 치려했고 임경업은 의주에 파견되어 호국을 경계했다. 호국은 임경업을 두려워하여 의주를 피해 바다를 건너 한양에 당도하였고 왕대비와 세자 대군은 강화도로 피란했다. 남한산성에 피란해 있던 왕과 신하는 호국에 항복했고 호국은 세자 대군을 잡아서 호국으로 돌아갔다. 이때 임경업은 뒤늦게 소식을 듣고 호국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호국의 선봉장인 용골대는 임경업에게 조선의 항서와 공문을 보여주었고 세자 대군 또한 임경업을 말리므로, 임경업은 할 수 없이 호국 군사들을 보내주고 애통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호국에서는 임경업을 경계하여, 명나라를 칠 테니 원병을 보내라며 임경업을 대장으로 보내게 했다. 임경업은 왕명으로 호국에 가기는 했지만 명나라의 황자명과 몰래 연락하며 무조건 항복한 뒤 후일을 도모하자고 하였다. 임경업과 호국 군사들이 마침내 황자명이 지키고 있는 피섬에 가자 황자명은 거짓 항복하였고 임경업은 조선으로 돌아왔다. 이를 이상히 여긴 호국 장수가 호국 왕에게 임경업이 명나라와 내통하는 것 같다며 알렸다. 호국 왕은 임경업을 잡아 보내라고 조선에 알려왔다.
임경업은 죽을 것을 예감하고 호국으로 가다가 압록강에서 밤도망을 하여 속리산으로 가서 중노릇을 하였다. 그런 뒤 기회를 틈타 배를 타고 명나라로 갔다. 황자명은 임경업을 기쁘게 맞았고 호국이 남경을 치자 황자명은 임경업에게 피섬을 맡기고 출병하였다. 그런데 임경업의 수하에 있던 독보라는 중이 호국 사람과 내통하며 재물을 주면 임경업을 잡게 해주겠다고 하였다. 독부는 황자명이 쓴 것처럼 거짓 편지를 써서 임경업을 유인하였다. 배를 타고 가던 임경업은 호국에 잡혀 갔다. 호국 왕은 굽힘이 없는 임경업의 강직함에 탄복하여 세자 대군을 조선으로 보내고 뒤에 임경업도 보내주었다.
이때 권세를 쥐고 있던 김자점은 임경업이 돌아옴을 경계하여 의주에서 잡아 옥에 가두었다. 그때 관원이 김자점의 모해임을 임경업에게 알리고 임경업을 풀어주었다. 임경업이 왕을 찾아가 옥에 갇힌 일을 말하자 왕이 신하들에게 영문을 물었다. 어쩔 수 없이 김자점이 와서 나중에 전하려 했다고 하였다. 왕은 김자점 일당을 금부에 가두고 임경업은 풀어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자점은 무사들을 시켜 임경업을 때리게 한 뒤 옥에 가두었다. 임경업은 결국 죽었고 김자점은 자결한 것이라 보고하라 하였다. 왕은 애통해하며 크게 장사 지내주라 하였고 이시백이 김자점의 흉계를 왕에게 알려 왕은 김자점의 능지처참을 명했다. 그날 밤, 왕의 꿈에 임경업이 나타나 고마움을 표시하며 통곡하고 돌아갔다.
핵심정리
▶연대 : 모름(18세기)
▶갈래 : 전쟁 소설, 역사 소설, 영웅 소설
▶배경 : 시간(병자호란), 공간(우리 나라)
▶성격 : 임경업 장군의 생애를 전기체로 기록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소재 : 병자호란과 임경업(林慶業)의 생애
▶주제 : 민중적 영웅 임경업의 비극적 일생과 호국에 대한 정신적 승리감. 임진왜란, 병자호란 뒤의 배청 사상(排靑思想)
▶의의 : 위축된 민족의 사기 진작
이해와 감상
<임경업전>은 조선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의 일생을 작품화한 한글소설로, 작자와 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알 수 없다. <임경업전>은 정조의 명령에 따라 임경업에 관한 실기를 모아 1791년에 간행한 <임충민공실기>를 참고하고, 민간에서 구전되는 설화를 토대로 하여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소설의 내용은 실제 사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병자호란의 국치는 우리 민족의 힘이 부족한 때문이 아니라는 의식과, 조정에 간신이 있어서 임경업과 같은 인물이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는 집권층에 대한 비판의식을 아울러 반영하고 있다. 호국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나라의 위기를 당하여 개인의 사리사욕만을 일삼던 간신에 대한 분노를 소설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나, 사실은 외적의 침입으로 수난을 겪은 조선조의 국민들이 모두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국난 중에 영웅의 활약을 갈망하고 있음에 부응하여 <임진록>.<박씨전>.<최고운전>등과 함께 창작된 허구적 작품이다. 조선 후기 민족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추가>
18세기 초 조선에서는 참담했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 이 두 난에서 위대한 전공을 세운 명장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전쟁 소설[군담 소설]이 창작되었다.
이 작품은 인조 14년에 청에 의해 서울이 함락을 당하고, 인조(仁祖)가 남한산성에서 무릎을 꿇은 이른바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전쟁 소설이다.
이 소설은 정확한 창작 연대와 작가를 알 수 없지만, 서민 계층의 작가라 볼 수 있다. 비교적 개인적 전기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 충주 달천에서 태어난 임경업은 어려서부터 동네 아이들과 노는 데 전쟁놀이를 즐겼고, 스물 다섯에 무과를 급제한 후 관직에 나아갔다. 그는 병사를 잘 통솔하고 산성을 완축하여 군정을 잘 다스려 병사들과 임금으로부터 한가지로 신망을 받았다. 또 호국이 북쪽 오랑캐 가달의 침략을 받고 중국에 도움을 청해 왔을 때, 명나라에 사신을 와 있으면서 나라에 적당한 명장이 없는 고로 임경업이 청병대장이 되어 나아가 지략과 용맹을 발휘하여 가달군을 섬멸하고 용맹을 중원에 떨치기도 하였다. 그 후에 호국이 교만해져서 명나라를 침공하고 이어 우리나라를 정복하려고 하자, 조정에서는 임경업을 의주 부윤으로 삼는 동시에 부원수 겸 방위사로 임명하여 호국의 침공을 막아내려 했다.
그러나 호왕은 임경업의 신출귀몰한 전술을 잘 알고 의주성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우회하여 일거에 서울로 쳐들어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한 왕에게 항복을 받기에 이른다. 의주에서 호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임경업 장군은 이 소식을 듣고 분을 참지 못하여 국가의 불행을 통곡하다가 마침 호나라 장수 용골대가 두 세자를 인질로 데리고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원수를 갚으리라 작심하고 맞아 싸워 이긴다. 이에 용골대가 진군을 하지 못하고 왕에게 장계를 올려 임경업에게 길을 열어 주라는 조서를 내리게 하자, 인조는 어쩔 수 없이 임경업 장군에게 길을 열어주라는 칙서를 보내어 길을 열어 주게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싸움에서 진 나라의 참상과 이를 가슴을 쥐어뜯으며 지켜보아야 하는 임경업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를 잘 읽을 수 있다. 한편, 반드시 원수를 갚고 볼모로 잡혀간 대군을 구출하겠다는 일념으로 임경업은 황자명과 더불어 호적을 치자고 하고 이후 전쟁에서 승리하였는데, 호국에서는 도리어 이를 핑계로 임경업을 데려다가 죽일 궁리를 한다. 이를 간파한 임경업은 호나라 사신을 따라 가는 길에서 마천령에서 도망쳐 소인산으로 들어가 스님으로 변장한다. 무예를 닦은 후에 천조에 들어가 남경 땅에 이르러 황자명을 만나 북호를 치기로 함께 결의하고 싸우다가 배반자가 있어 호왕에게 잡혔으나 기개를 발휘하여 세자와 대군을 모두 구출하여 조선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마침내 조선에 돌아온 임경업은 영의정 김자점의 모함과 질시를 받아 간신의 손에 비참한 일생을 마치게 되고 만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과 별로 다름이 없다는 데 있다. 이는 다른 군담 소설처럼 허구성을 가미하여 주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를 엮지 않고 오직 객관적이고 정사(正史)의 태도로 역사적 사실 그대로 주인공을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당대의 사회 역사 현실을 말 그대로 사실 그대로 옮기는 데 성공한 이 소설에서 우리는 위국충절에 불타는 장군을 배반하고 질투하는 간신들의 교활함이 극에 다르고 있음을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끔찍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당시의 위정자들은 조금도 반성하거나 뉘우침이 없고 오히려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눈이 어두워 정치적인 분열을 거듭 했다는 사실과 관계가 깊다. 전란 뒤의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적 파탄에서 헤매고 있는 백성들을 구제하여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지도적 위치에 있던 사대부 양반들이 이러한 난국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권모술수와 자신의 영달에만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불의가 판치는 사회에서 간신배들과,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양반들의 처신에 염증을 느낀 지사(志士)들이 그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이 작품을 통해 들어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이 작품은 명나라에 대한 충성과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 남한산성에서 굴욕적인 항복에 대한 정신적 보복을 주제로 삼았다. 이만큼 중국 명나라 중심의 당시의 보수적인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기도 하다. 임경업전은 이 시기에 나온 다른 소설 가운데 특히 박씨전과 공통점이 많다. 박씨전은 주인공이 가공의 박씨 부인이란 점만 다를 뿐, 다 같이 청나라에 대한 보복을 중심에 놓고 있다. 등장인물도 이시백, 임경업, 용골대 따위의 실존 인물을 함께 쓰고 있다. 또한 임경업이 이시백의 천거를 받았다는 점, 임경업이 명천자의 명을 받고 가달군을 크게 격파한 이야기들에서 구성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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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목록
2018년 ebs수능완성
2018년 6월 2학년 전국연합
2014 6월 평가원 모의수능
2014 인터넷수능 문학
2013 ebs n제
임경업전(2014인수)
임경업전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실패했던 영웅이 임경업의 활약상을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역사 군담 소설이다. 한편 역사 군담 소설에 나타난 영웅적 활약상의 이면에는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무능한 위정자들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
작품의 형성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인 임경업과 관련된 단편적 일화에 민중적 의식이 가미되어 생겨난 설화들을 작가 의식에 따라 일대기 형식으로 통합 재구성한 것이다. 또, 이 작품은 병자호란의 치욕에 대한 복수심과 민족적 보상 심리에 부응하면서 현실에 대한 민중적 반성을 위하여 창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는 주인공의 애국심, 호국에 대한 적개심, 나라의 위기를 외면하고 사리사욕만을 일삼던 간신에 대한 분노 등이 민족적, 민중적 차원에서 형상화되어 있다.
민중의 영웅 임경업
작가는 역사적 사실의 변용, 과장 등을 통하여 임경업을 민중의 영웅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임경업이 명나라에 갔다가 가달의 침략으로부터 호국을 구원하고, 호국의 왕이 경업의 충절에 감동하여 인질로 잡았던 왕자까지 풀어 준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주인공을 영웅으로 꾸미기 위한 허구이다. 그리고 조선왕의 항복을 받고 회군하는 호국군을 의지에서 격파하려 했던 것도 임경업만은 호국군에게 승리할 수 있는 영웅이었다는 점을 나타내면서, 병자호란에서의 패배가 결코 우리의 힘이 모자라서 그리 된 것이 아님을 암시한 것이다.
한편, 임경업이 보잘 것 없는 집안에서 성장하였고, 목민관으로서 백성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모습을 강조하여 민중적 존경을 받도록 허구화한 것은, 그가 귀족적 영웅이 아닌 민중적 영웅임을 나타내기 위한 구성이다. 특히, 민족적 영웅으로서 응지를 펴 보지도 못한 채 김자점에게 살해됨으로써 민중적 영웅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다. 아기장수 설화같은 민족 설화에서 민중 영웅은 언제나 미천한 처지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원통하게 죽는다는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민중 분노의 표출
이 작품에서 김자점은 임경업을 죽인 뒤 곧 왕의 문초를 받고 처형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다르다. 임경업을 살해한 뒤에도 김자점은 처형되지 않았다. 그런데, 민중의 시각이나 논리에서는 이것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작가는 영웅 임경업을 제거한 김자점이 즉시 처형된 것으로 변형 서술하였으며,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잔인하게 김자점에게 복수를 하는 것으로 허구화하였다. 이것은 민중의 꿈이요 희망을 꺾어버린 자에 대한 강렬한 분노요, 무자비한 응징인 것이다. 그리고 조정에 김자점 같은 간신이 있어 임경업 같은 유능한 인물을 두고도 호란의 국치(國恥)를 당하였다는 의식, 즉 지배 계층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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