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문학정보입니다.
오늘은 시조.가사 중 김춘택의 가사 별사미인곡 작품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조.가사의 작품의 주제 내용은 일편단심 입니다. 그럼 상세한 내용은 밑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김춘택의 가사 별사미인곡
김춘택의 가사, 별사미인곡
이보소 져각시님 셜운말 그만하오
(이보소 저 각시님 서러운 말씀 그만 하오)
말을 드러니 셜운줄 다모를쇠
(말씀을 들어보니 서러운 것이 끝이 없소)
인년인들 가지며 니별인들 갓탈손가
(인연인들 한가지며 이별인들 같을 것인가)
광한젼 백옥경의 님을뫼셔 즐기더니
(광한전 백옥경에 님을 모셔 즐기다가)
니래 였거니 재아을 업손가
(이별을 하였거니 재앙인들 없을 것인가)
해다 저문날의 가줄 설워마소
(해 다 저무는 날이 가는 것을 서러워마소)
엇더타 니내몸이 견흘데 전혀없내
(정녕코 이 몸을 견줄데가 전혀없네)
광전 어대머오 백옥경 내아던가
(광한전이 어디 있던가 백옥경을 내가 알던가)
원앙침 비취금의 뫼셔본적 히없내
(원앙침과 비취금을 모셔본 적이 없네)
내얼골 이거동이 무엇로 남길고
(내 초췌한 얼굴과 거동으로 어찌 임을 사랑할꼬)
질을 모거니 가무야 더니가
(길쌈을 모르거니 춤과 노래 더 이를가)
엇인지 님향 조각이 (무엇이 어떻던지 님 향한 일편단심)
을 하리 심기시고
(한 조각 마음은 하늘이 주시고)
셩현이 가라치서
(세상 이치 통달한 성인이 가르치시어)
뎡학이 알펴잇고 부월이 두해이셔
(끝없는 지옥은 눈앞에 시퍼런 도끼는 뒤에 있다하더라도)
일백번 죽고죽어 뼈가 길니된후도
(일백번 죽고죽어 뼈가 가루가 될 지언정)
님 향 이이 별손가
(님을 향한 이 마음이 변할리야 있을 것인가)
나도 일을가저 의업 것만어더
(나도 일을 가져서 남이 없는 것만 얻어서)
부용화 오짓고 목난으로 사마
(연꽃으로 옷을 짓고 목련으로 꽃신을 신어서)
한긔 맹셰여 님섬기랴 원이러니
(하늘에 맹세하여 남 섬기는 것이 소원이건만)
조물 긔가 귀신이 희즈온가
(조물주의 시기인가 귀신이 훼방을 놓는 것인가)
내팔 그만니 사을 원망가
(내 팔자가 이러니 어찌 사람을 원망할 수 있으랴)
내몸의 지은죄를 모니 긔더죄라
(내 몸의 지은 죄를 몰라서 더 큰 죄인가)
나도 모거니 이어이 아도던고
(나도 모르는데 남이 어이 다 알리요)
한하 살인가 이몸의 되녀이셔
(하늘이 이 몸을 그리되게 하셨는가)
핵심정리
▶갈래 : 가사
▶주제 : 임 향한 일편단심
▶특징 : 사랑 받지 못한 여인 ⇒ 사랑 받지 못한 신하: 폭넓은 공감대 형성<특수한 사연을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간의 보편적 감정에 호소)로 전환하여 폭넓은 공감대 형성>
▶시상전개
▪ 시적화자(유배지고독과 외로움)
↓
▪ 부용화 옷(一片丹心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정성)
↓
▪ 광한전 백옥경군선(임 계신 곳임과 함께 하고픈 소망)
이해와 감상
조선 숙종 때 김춘택(金春澤)이 지은 가사. 지은 시기는 작자의 문집인 ≪북헌집 北軒集≫ 권4 논시문(論詩文)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내가 제주에 와 우리말로 <별사미인곡>을 지으니, 이는 정철(鄭澈)의 양미인곡(兩美人曲)에 추화(追和)한 것이다…….”라는 논시문의 기술에 의해 작자가 제주도에 유배된 1706년(숙종 32) 4월에서 1710년 6월 사이에 <별사미인곡>을 지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작품은 4음보 1행으로 계산하여 모두 79행이며, 율조는 3·4조가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가사의 분량은 양미인곡을 모방하여 창작하였으나 구성은 <속미인곡>과 같이 대화체로 되어 있다.
가사의 서두는 가사 중의 갑녀(甲女)라 할 수 있는 여인이 “이보소 저 각시님 설운말 그만오.”라고 시작하여 마치 앞에 어떤 하소연을 들은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는 <속미인곡>을 연상하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 대하여 가사 가운데 을녀(乙女)라 할 수 있는 여인이 자기의 소회를 풀기 시작한다. 곧, 그는 자기가 광한전 백옥경에서 임을 뫼시다가 아양을 부려 그것이 재앙이 되어 이렇게 이별하게 되었음을 토로한다. 그리고 스스로 아무런 재주도 없어 임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임에 대한 자기의 사랑이 변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지은 죄를 스스로 모르니 그것이 더욱 큰 죄라 하며 자기가 지은 죄를 자기도 모르니 다른 사람이 어찌 알겠느냐고 하여 스스로의 허물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고 있다. 또 임을 위하여 산호(珊瑚) 재기와 백옥함에 임의 옷을 간수하고 있지만 임에게 가져다 줄 사람이 없으며 혹시 가져간다 하여도 임이 보시기나 할 것인가라고 하여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생에서 임을 가까이 못하는 안타까움은 차라리 후생에서 구름이 되어 임에게 덮이고 싶다고 하였다. 그것을 임이 싫다고 하면 다시 바람이 되어 여름날 임을 부쳐주고 싶다고도 하고, 그것도 싫으면 명월(明月) 혹은 명산대천·노목·지초·오현금·말·새·짐승 등이 되어서라도 임에게 가까이 있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이에 대하여 갑녀는 을녀가 이렇게 된 것은 팔자며 천명이니 구름이나 바람이 되면 무엇하겠느냐며 차라리 술이나 잔 가득 부어 마시고 한시름 잊으라고 권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대화체 구성이라는 점에서 <속미인곡>에 가까우나 내용에 있어서는 <사미인곡>의 영향도 보인다. 군주에 대한 원망은 거의 보이지 아니하고 간절한 충성을 읊었다는 점에서 연군가사의 면모가 두드러지며, 유배가사로서도 가사문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이 가사를 지어놓고, 정철의 가사에 비하여 그 말은 더욱 아름답고 그 곡조는 더욱 처량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의 구성은 능란하다 하여도 양미인곡에 비하여 정제되지 못한 점이 있다. 국문학사상 미인곡계 가사 가운데 한 부분을 차지하는 가사로서 의의를 지니며, 당쟁으로 얼룩진 조선조 역사의 반영으로서도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더 알아보기
▲정철의 “사미인곡”과의 비교
정철의 사미인곡에 비하면 임과 헤어진 화자의 절실한 감정 표현이 모자라며 후반부에 군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 단점이지만 순한글을 사용하여 정연한 율조아래 평이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진유의 “속사미인곡”
정철의 사미인곡을 모방한 동일한 주제와 내용을 가진 작품 중에 하나다. 기행체 구성 방식을 도입하여 유배 당한 자신의 처지를 천상에서 내려와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에 비유하였다. 기행을 하게 된 동기, 유배지로 향하는 출발 과정, 유배지에서의 견문이 세세하게 진술되어 있으나 회정(懷情)은 언급되지 않았다. 유배(이별)의 동기가 자신의 죄 때문도 아니고 임이 박정해서도 아니라 자신을 질투한 여인들의 참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여인들을 정적으로 묘사하여 자신의 유배가 노론 일당의 모함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였다.
김춘택(金春澤, 1670년 1717년)은 조선후기의 문신, 외척, 작가이다. 자(字)는 백우(伯雨), 호는 북헌(北軒), 본관은 광산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손자이다. 종조부인 김만중의 문하생이다
별사미인곡은 숙종 때 북헌 김춘택이 지은 작품이다. 김춘택은 숙종 계비인 인현황후 김씨의 친정 조카인데 장희빈으로 인해 인현왕후가 폐비되었을 때, 글로 연좌 되어서 다섯 번이나 유배되고 세 번이나 옥에 갇혀 30여년을 고생했는데 이 별사미인곡은 그가 제주로 유배되었을 때 1708년(숙종 34)에 지은 것이다. 순 한글로 표현되어 있고 율조의 흐름과 언어구사가 평이하여 친근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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