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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의 향가 원왕생가 해석 해설

by bloggermin2 2023. 6. 5.

안녕하세요, 문학정보입니다.

오늘은 고대가요.향가 중  광덕의 향가 원왕생가작품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대가요.향가의 작품의 주제 내용은 극락왕생 입니다. 그럼 상세한 내용은 밑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광덕의 향가 원왕생가

광덕의 향가 원왕생가

 

 

광덕의 향가 원왕생가 해석 해설

광덕의 향가 원왕생가 해석 해설입니다.

광덕의 향가, 원왕생가

광덕(廣德)의 향가, 원왕생가(願往生歌)

달이 어째서
서방까지 가시겠습니까
무량수전 전에
보고의 말씀 빠짐없이 사뢰소서 / 무량수불에게 소원을 전해 주기를 달에게 부탁함
서원 깊으신 부처님 우러러 바라보며
두 손 곧추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 부처에게 간절히 왕생을 기원하는 화자의 모습
아아, 이몸 남겨두고
사십팔대원 이루실까 / 무량수불에게 서원의 실행을 당부함.

*원왕생 : 부처의 구원을 받아 극락으로 가기를 바람.

<현대어역>
달님이시여, 이제
서방 정토까지 가시려는가.
(가시거든) 무량수불 앞에
일러 사뢰옵소서
맹세 깊으신 부처님에게 우러러
두 손을 모아,
왕생을 원하여 왕생을 원하여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소서.
아아, 이 몸 남겨 두고
마흔 여덟 가지 소원을 이루실까.

핵심정리
▶연대 : 신라 문무왕(661681) 
▶종류 : 10구체 향가 
▶성격 : 불교적, 기원적(祈願的)
▶주제 : 극락 왕생에 대한 간절한 염원
▶의의 : 기원가(祈願歌)의 한 전형을 보여 줌
▶출전 : <삼국유사>권5, 광덕엄장
▶특징
설의법, 상징법, 돈호법 등 다양한 표현방법을 사용함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시상을 전개함
자연물에 의탁하여 화자의 소망을 호소함.

연구문제
1. 본문이나 찬 기파랑가, 정읍사 등에 등장하는 달의 문맥적 의미를 고찰해 볼 때, 당시 사람들의 달에 대한 관념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지 말해 보라
▶자연물이 아닌 신령스러운 존재로 보고 있다.

이해와 감상
이 노래는 전형적인 3장 구성의 사뇌가 형식으로서 초장과 중장이 각 4구씩이다. 초장에서는 먼저 극락세계로 가라고 권하고 나서 다음에 번뇌가 없어지도록 발원하라고 권하였다. 중장에서는 부처에게 지성으로 빌되 제발 극락으로 가게 하여 달라고 애인을 그리워하듯 발원하라고 충동하였고, 종장에서는 나 같은 사람은 건드리지 말고 큰 원이나 이루도록 노력하라고 타일렀다. 이 노래는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희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의 작가 문제에 대한 논의로서 광덕, 광덕처, 제3자 또는 전승가요로써 작가가 따로 없는 민요라는 설이 있다.

<심화감상>
신라 향가의 하나. 문무왕 전후 때 생성된 사뇌격(詞腦格) 형식의 향가. 10구체 노래의 유래에 관한 배경 설화와 함께 향찰로 표기된 원문이 <삼국유사> 권5 광덕엄장조(廣德嚴莊條)에 수록되어 있다. 배경 설화에 따르면 문무왕대에 사문(沙門)인 광덕과 엄장이라는 두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서방정토에 왕생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 생활에만 전념하던 광덕이 먼저 죽자, 엄장은 그의 아내와 함께 유해를 거두어 장사를 지냈다. 그 일을 끝낸 뒤 엄장이 광덕의 아내에게 동거하기를 청하므로 이를 허락하였다. 밤에 엄장이 정을 통하려 하니 광덕의 아내는 정색을 하면서 말하기를 "죽은 남편은 10년을 동거했으나 한 번도 동침을 하지 않고 오직 수도에만 전념하였는데 지금 당신은 이런 추한 행동을 하려 하니 정토를 구하기는 산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엄장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물러 나와 몸을 깨끗이 하고 크게 뉘우쳐 한마음으로 관(觀)을 닦은 결과 엄장 또한 서방정토로 왕생하게 되었다. 그 부인은 분황사의 비인데 실은 관음보살의 십구응신의 하나였다. 그런데 광덕에게 일찍이 <원왕생가>라는 노래가 있었다고 한다. 배경 설화의 이러한 모호한 문맥 때문에 즉 광덕이 지었다라고 분명히 기술되어 있지 않고 그냥 있었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에 이 노래의 작자를 광덕으로 규정하는 견해와 그 아내가 지었다고 하는 견해, 민요적인 전승가요였으므로 집단이 공동으로 지었다는 견해와 원효가 지었다는 견해. 불교 신앙에 투철한 상층 지식인(불승 또는 귀족)이 지었다는 견해 등 여러 갈래로 엇갈려 있다. 이 가운데 두 가지 견해가 가장 유력한데 배경 설화와 이 노래가 생성배경을 함께 한 동일문맥으로 볼 경우 광덕이 지었다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으며 이와 달리 배경설화와 노래가 각각 달리 생성되어 전승되다가 뒷시대에 와서 임의로 결합되었다고 볼 경우 정토신앙에 투철한 불승 또는 귀족이 지었으며 광덕과는 무관하다는 견해도 일리가 있는 학설로 대두되고 있다. 김완진의 현대어 풀이는 다음과 같다.

달이 어째서
서방까지 가시겠습니까
무량수전 전에
보고의 말씀 빠짐없이 사뢰소서
서원 깊으신 부처님 우러러 바라보며
두 손 곧추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아아, 이몸 남겨두고
48대원 이루실까

이 노래는 <도천수관음가>와 더불어 신라 시대 기원가, 곧 기도하는 노래로서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기원가의 어법은 예배대상에 대한 청원이나 탄원 및 기구(祈求).고백의 어법이 중심이 되는데 이 작품도 바로 이러한 어법구조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예배 대상은 무량수불로 되어 있고, 아미타신앙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무량수불은 곧 아미타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소재로 선택된 달은 기도자(서정적 자아)가 위치한 현세와 극락정토인 서방을 잇는 중개자로서 나타나 있다. 혹은 서방정토의 사자(使者)로서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다. 노래의 첫 부분을 달이라는 대상의 초월적 힘에 기대어 시작하면서, 제 3.4구에서 기도자는 자신의 청원을 달에게 부친다. 무량수불전에 자신의 뜻을 아뢰달라는 부탁이다. 그 소임이 무엇인지는 잠시 유보함으로써 긴장을 유발한다. 이어서 제 5~8구에 자신의 청원이 서방정토로 왕생하는 데 있음을 합장의 자세로 경건하게 아뢴다. 특히 제 5구는 아미타불에 대한 경배가 표면화되고  있지만 서원 깊으신이라는 관형구로 제시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단순한 외경이 아니라 아미타불이 법장보살로 되었을 때 세자재왕불에게 맹세한 중생 제도의 서원을 상기하도록 하여 기도자 자신을 왕생하게 하는 일에 아미타불을 묶어 놓자는 강한 의지까지도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노래의 핵심, 곧 주제는 제 7구에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비록 함축적인 어휘로 표현되었지만 현실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당장이라도 현세를 초월하겠다는 절대절명의 청원으로 간주된다. 맨 끝의 2구는 일종의 독백형식이면서 제 5구에서부터 계속되어 온 기원의 연장이자 그 심화 확대라는 견해와, 의문형으로 끝내 설의법의 가면을 썼으나 내면적으로는 강한 명령법과 접맥되는 위협적인 요소가 숨어 있으므로 주술적인 의지가 함축되어 있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이 작품은 신라불교가 귀족 불교의 한계를 넘어서 일반 서민에까지 아미타신앙으로 확산되는 대중 불교로의 전환을 배경으로 현세의 고난을 초극하여 내세의 극락으로 왕생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기도의 형식으로 담은 기원적 서정적 향가이다.

더 알아보기
▲배경설화 : 이 노래는 유사 권 5 광덕엄장 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문무왕 때 사문(沙門;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람)으로 광덕, 엄장이란 두 사람이 있어 사이가 매우 좋았으니, 항상 둘 중 누구든지 먼저 잘되면 알려 주기로 하였다. 광덕은 분황사(芬皇寺) 서쪽 마을에 처자를 데리고 은거하여 짚신이나 삼아 그날그날 지내고, 엄장은 남악에 살면서 농사를 지어 지냈다. 어느 날 저녁에 “나는 벌써 소원 성취했네, 나를 따라 오세”하는 소리가 문밖에서 난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중천 구름 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튿날 아침 광덕을 찾아가 보니 과연 죽었던 것이다. 장례를 치른 뒤에 과부가 된 그 부인에게 같이 살기를 청하였다. 과부도 허락하므로 엄장은 속으로 좋아서 같이 지내면서 同寢하기를 청하니, 의외에도 거절하며 말하기를 “당신이 淨土를 바란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염장은 놀래서 “그러나 광덕하고는 같이 잔 것이 아니냐, 그렇거늘 나와 같이 잔다고 한들 어떠냐?”고 하니, 과부가 하는 말이 광덕은 나와 같이 10여년을 동거하였어도 한번 잠자리를 같이 한 일이 없다. 하물며 서로 관계를 했겠습니까? 그는 다만 매일 밤 정좌하여 염불 외고 十六觀을 했었다. 정신을 이렇듯이 하였는데, 천리를 갈려면 한 걸음부터 골라야 하는 법, 당신이 정토를 원한다는 것은 기가 막힐 일이다.“라고, 이러는 바람에 그는 얼굴을 붉히고 쥐구멍을 찾는 듯이 도망쳐 그 길로 원효법사를 찾아가서 도를 닦고 소원성취 하였다. 광덕의 처는 곧 芬皇寺의 婢가 되었다.

출제목록
2019년 ebs수능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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